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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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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괴롭히는 대상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다. 올해로 6년이 지났다. 

 

2년 전 아버지와 갈등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운동이었다. 아버지는 약 기운이 떨어지면 몸이 굳는다. 몸이 굳기 시작하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리 하나 들지 못한다. 아버지는 이 시간이 지옥이라고 하셨다. 병이 진행될수록 몸이 굳는 시간은 늘어갔다. 이 끔찍한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운동이었다. 파킨슨병에 좋은 운동은 주로 스트레칭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운동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설득도 하고 화도 내고 울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해 겨울 아버지는 운동을 결심하셨다. 나도 같이 운동을 했다. 아버지는 몰라보게 몸이 건강해지셨다. 우리 가족은 희망에 부풀었다. 기쁨은 잠시였다. 아버지는 다시 운동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계속 아버지와 운동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아버지 몸 상태는 불규칙했다. 아버지가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매일 달랐다. 내가 없을 땐 혼자 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아버지는 다 집어치우자며 화를 내셨다. 내가 되도록 같이 하겠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아버지는 빠르게 몸이 나빠지셨다. 우울증까지 왔다. 밤엔 잠을 자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밤새도록 아버지 병시중을 들었다. 주로 소변을 보기 위해 일으키고 눕히는 일이었다. 1시간에 한 번 이상은 해야 했다. 낮엔 일을 했다. 하루에 3~4시간밖에 자질 못했다. 한숨도 자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어머니와 나는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셨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얼마나 날카로워질 수 있는지 그때 알았다. 식욕도 없어졌다. 혼자 조용히 잠을 자는 게 소원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두려웠다.

 

아버지의 분노와 우울은 어머니와 나를 향했다. 이에 질세라 어머니와 나도 하지 말았어야 할 말로 아버지를 아프게 했다. 매일이 지옥이었다. 내일이 두려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다른 거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몸만 신경 써달라고 울고 불며 말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자신의 몸을 이렇게까지 방치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픈 게 죄가 아니듯이 어머니와 나는 무슨 죄냐고 항변했다.

 

아침부터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거실에 나가보니 아버지는 바닥에 엎드려 계셨다. 몸은 축 쳐져 있었다. 입에선 침과 함께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냄새는 고약했다. 아버지는 제초제를 마셨다. 처음엔 놀랐지만 금세 담담해졌다. 아니 허탈했다. 진짜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냐고 묻고 싶었다. 119에 신고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 살리지 말어. 그냥 죽게 내버려둬."

 

구급차 창으로 아침 햇살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나는 말없이 한참을 바라봤다. 햇살은 눈부시게 빛났다. 이대로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셨다. 구급차 안은 제초제 냄새가 가득했다.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사는 제초제를 얼마나 드셨는지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코에 검은색 긴 호스를 꼽고 호흡기에 의지한 채 며칠을 누워 계셨다.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아버지는 아프셨다. 하루 6번 약을 드셨다. 몸이 굳기 시작하면 1~2시간 꼼작 못했다. 왼쪽 발가락은 힘을 바짝 준채 오징어처럼 말렸다. 눈빛은 떨리고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매일 내가 모르는 고통 속에서 살고 계셨다. 약 기운이 퍼지면 움직일 수 있었다.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찾아온 달콤한 시간. 자고 싶었을 것이다. 쉬고 싶었을 것이다.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와 아들은 온갖 서운함을 토로했다. 운동하라고 잔소리했다. 운동을 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 경험이 없다. 환자라서 체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몸이 굳었을 때 힘을 다 쓰고 지쳤을 것이다.

 

생각이 멈추고 눈을 꼭 감고 누워 계신 아버지가 보였다. 코 끝이 찡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세상에 서러움이 다 나에게 온 것 같았다. 울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안감힘을 썼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다시는 운동하라고 강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아버지가 운동하고 싶을 때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버지 힘들게 해서 죄송하고 했다. 아버지를 위한 다는 말로 내 기준에 아버지를 맞추려 했다. 눈물이 흐르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없는 힘을 짜내 내 손을 꼭 잡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괜찮아. 우리 아들 착해. 잘하고 있어. 내가 다 알아. 고맙다 우리 아들..." 

 

아버지도 환자는 처음이었다. 나도 아픈 아버지를 모신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었다. 우리 가족은 천천히 서로를 이해했다. 싸울 일이 줄어들었다. 조금씩 웃음을 찾아갔다.

 

아버지가 아픈 건 변함없다. 아버지는 여전히 운동을 하지 않으신다. 다만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달라졌다. 내가 달라진 딱 그만큼 나는 살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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